시부야몰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최인호


책의 제목이 꽤나 비장하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있다.

왜?

엄마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9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따금 한번씩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다가 잘 생각이 나질 않으면 '엄마에게 전화해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곤하기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내 어머니는 아픔이었고,웃음이었고,잔치국수였고,한 때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땐 울어머니는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셔야만했다.

동네 잔칫집이나 초상집이 생기면 몇 날 며칠을 그 집에 다니면서 바느질을 해주고 식구들에게 먹일 쌀과 음식을 받아오셨다.

그리고 아기업는 포대기를 만들어서 머리에 이고 전남지방 일대를  돌아 다니시며 장사를 하셨다.

한아기는 등에 업고, 한아이는 걸리고, 머리엔 포대기를 이고 ,한쪽 손엔 보따리를 들고서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 갈 무렵부터 해주곤 하셨다.

그리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 부터는 기억이 생생하다.

6살 위의 오빠와 놀았던 기억.엄마가 부뚜막에서 해주시던 이야기, 동네아이들과 뛰어놀던 기억,등등 ...

엄마는 부뚜막에 앉아서 옛날에 외할머니 이야기를 잘 하셨다.

부농이셨던 외할머니는 장정처럼 당당하게 아랫사람들을 잘 부리고 어찌나 부지런하게 걸어다니시는지, 외할머니가 지나가면 치맛자락에서 삭삭~~하는 바람소리가 났더란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옷자락에선 항상 맑은 향내가 났었단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는 몰라도 외삼촌들이 일찍 죽음을 맞으면서 서서히 가세는 기울었고, 울 엄마도 가난한 집의 총각에게 결혼시킬 수 밖에 없었단다.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던 엄마의 얼굴엔 벌써 발가스런 홍조와 빛이 났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울 아버지는 평상시엔 아무렇지도 않다가 술을 드시고 많이 취하시면 꼭 엄마를 때리셨다.

살림을 부수고,욕을하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시면 엄마 머리채를 잡고 온 방을 빙빙 돌리며, 엄마가 반 죽음이 되면 그제서야 지쳐 쓰러지곤하셨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는 많이 변하셨다.

밖으로만 나가시던 아버지는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셨고, 낚시에 취미를 가지시면서, 엄마를 때리는 일이 없어졌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하고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던 엄마는 일찌기 신경통이라는 병이 왔고, 덕분에 힘든 집안일은 아버지가 도맡아서 하시곤하셨다.

혹 엄마가 아프거나 집에 계시지 않으면 아버지는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모두 당신이 하셨고, 밥을 지어서 "막내야 먹자. " 그러면 나는 밥숫갈만 들고 먹으면 그만 이었다.

그런 아버지께선 낚시터에서 결국 쓰러지셨고 하루만에 저세상으로 가셨다.

술만 드시면 엄마를 지독하게 때리신 것 빼고는 나에겐 한없이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셨다.

나는 어릴때 부터 잔치국수를 좋아했다.

밀가루로 만든 모든 음식을 좋아했지만 특히 가느다란 국수를 삶아서 멸치국물에 양념간장을 타서 먹는 그 맛을 정말 좋아했다.

내가 입맛이 없다고 엄마에게 말하면 금방 온집안에선 멸치물 우려내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그 시간 동안에 나는 마루에서 뒹굴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주황색을 띈 잘 익은 엄마의 김치와 함께 잔치국수가 상위에 올려져 마루에 나오면 ,  구수했던 멸치냄새...나는 아무리 해도 엄마의 흉내를 낼 수가 없다.

최인호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엄마를 돌이켜 보는 시간은 행복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일찌기 홀로되셔서 여섯자식들을 기르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었다.

담담하게, 무심하게 자식들을 기르셨고, 세상에 나와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셨다.

나이가 많이 드셔서는 노인성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로 인해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셨다

작가는 여섯자식을 혼자 몸으로 기르면서 받았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려하기 보다 , 자식들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했었다고 썼다.

나도 한 때 울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몇 년동안 엄마를 괴롭혀 드린적이 있었다.

엄마가 좀 힘들더래도 나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해주었더라면 하고 말이다.

나는 지금은 자립심이 강하고 때때로 용감하지만, 어릴적엔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법이었고 무조건 듣는 아이였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많이 시키지 못한다고 하실 때마다 으례 받아들였고, 스므살이 넘어서야 검정고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학까지 목표를 두고 시작한 공부였지만, 눈에 병(홍채염과 녹내장)이 생겨 실명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 덕분에 대학은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울어머니에게 얼마나 원망을 하며 독설을 퍼부었는지, 아마도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엄마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도 철이 드는 것이었다.

내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조금씩 성장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공부를 시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느라고 어쩔수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었다.

내 아이가 자라 자아를 찾아가면서, 내 가슴을 후비는 말을 하곤한다.

철없을 적에 내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아~!!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내 가슴에 살아계신다.

어머니와의 기억이든, 추억이든 그 모든 것들이 살아서 순간순간 나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눈물짓게 하기도 한다.

오늘은 추적추적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런날엔 울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구수한 잔치국수가 먹고 싶다.

♨울 어머니 우스갯소리......미친ㅇ이  얌전을 내면 요강을 가새서 살강에 엎어놓니라...^^

                                                                                                                                                 (가새다...행구다),(살강=부엌의 선반)


기억상자 푸른빛 연꽃 미라크론 혼자만의 World 이어 포 뮤직 제이키드 손끝으로 만드는 행복 너에게 줄께~♡ 다육언니다 제이심플
2010/03/05 13:04 2010/03/0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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